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 시내 개인병원(의원) 중 소아청소년과는 2017년 521개에서 지난해 456개로 12.5% 줄었다.
성형외과 신경과, 내과 등 개인병원 진료과목 총 20개 중 5년 전보다 수가 줄어든 과목은 소아청소년과와 영상의학과(-2.4%)뿐이다.
이에 대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저출산과 낮은 수가 등으로 수입이 계속 줄어 동네에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운영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아과에 한번 가려면 이른 아침부터 몇 시간씩 대기 줄을 서야 하고 그나마도 진료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 행운이라고 여겨질 만큼 진료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사태가 빈번하다.
생각해 보니 주변에 소아과가 별로 없긴 하다.
왜 점점 소아과가 사라지고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저출산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1960년대 후반에 정점에 달한 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2021년 출생아 수는 27만 5천여 명으로, 1960년대 후반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소아나 청소년은 성인과는 다른 신체적 특성을 가지므로 별도의 전문적인 진료과가 존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소아과가 다루는 영역이 내과계 진료과와 거의 겹친다는 게 문제다.
성인이 배탈이 나면 내과를 가지만 아이는 소아과에 간다.
성인은 기침 때문에 호흡기내과를 가지만, 아이는 소아과에 간다.
성인이 경련이 생기면 신경과를 가지만 아이는 소아과에 간다.
바꿔 말하면 아이가 성인이 되는 순간 그는 다른 진료과의 잠재적 환자군이 된다.
소아과에는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이만을 대상으로 삼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 저출산은 소아과 폐과와 동의어다.
실제로 소아과는 저출산의 영향을 직격으로 맞았다.
지난 10년간 소아과 의사의 진료비 수입은 25% 가까이 줄었고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아과 의원도 61곳에 달했다.
2017년에 4만여 곳에 달하던 어린이집이 2021년에는 3만 3000여 곳으로 약 7000개가 사라진 것처럼 동네 소아과도 소아 인구 감소에 맞춰 사라진 것이다.
소아과 의사의 수급 문제
소아과 의사는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2021년 기준으로 소아과 의사는 1만 2천여 명으로, 전체 의사 수의 약 2%를 차지한다.
소아과 진료비에 대한 정부 보조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전문의가 되기 위해 진료과를 고르는 의사들이 볼 때 굳이 소아과를 골라야 할 필요성이 낮아졌다.
실제로 2023년에 이루어진 각 진료과별 수련의 지원율 자료를 살펴보면 소아과는 정원 199명 중 33명만 지원해 17% 정도의 지원율에 그쳤다.
소아와 청소년에 특화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공급 자체가 대폭 감소하게 된 것이다.
물론 현재의 소아과 의사도 사회 평균보다 많은 돈을 버는 건 맞다.
그렇지만 다른 진료과와의 상대적 격차가 문제다.
의사 면허 소지자는 전문의 자격 취득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질환에 대한 진료를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전문의 자격 취득을 위해 추가적 수련을 밟는 건 전문의 자격이 가져다줄 더 높은 기대수익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기대수익을 줄 만한 전문의를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출산율이 단기간에 나아지지 않을 게 자명한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소득이 예상되는 진료과 대신 소아과를 선택할 이유가 적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의대 증원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자리도 채워질 것 같지만 늘어난 의사들은 소아과 전문의가 되는 선택지 외에 더 나은 소득 수준을 누릴 수 있는 자리가 많다.
가령 레이저나 보톡스, 비만 관리 같은 미용 시술 분야는 의사 면허 취득 후에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렴하게 묶여있는 소아과 진료비보다 시술 비용이 훨씬 높아 소득 수준도 소아과 전문의보다 높다.
기껏 의사 수가 늘어나더라도 이들이 굳이 소아과를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낮게 책정된 수가체계
이는 미국의 10분의 1 정도로 낮게 책정된 수가체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성인과 달리 아이는 의사의 진찰에 협조적이지 않아 진료 시간이 더 길 뿐만 아니라 아이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줄 보조 인력 채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성인보다 약물의 투여 용량이 적어 병원으로선 약제 매출이 적다.
각종 검사 장비 사용 빈도도 높지 않다.
한마디로 진료 시간과 인건비는 많이 들지만 매출이 적다.
국가적으로는 매우 중요하지만 의사 개개인으로선 굳이 소아과를 택할 유인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저수가를 개선하기는커녕 과거 비급여였던 예방백신들을 2013년 급여화하면서 현행 수가의 70% 정도만 받도록 했다.
심지어 신생아 필수접종인 로타바이러스 백신 같은 경우 현행 수가의 40%만 받도록 했다.
소아 진료에 대한 부담
돈이 전부는 아니다. 자녀 수가 준 만큼 부모가 소아 진료에 갖는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아이를 빨리, 혹은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의료진에게 폭언, 심지어 폭행하는 사례가 늘었다.
맘카페 갑질도 무시 못 할 기피 요소다.
‘애가 먹을 건데’라며 없는 메뉴나 공짜 서비스를 요구한 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별점 테러를 일삼아 식당 사장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갑질 사례가 SNS에 자주 등장한다.
소아과 병원에선 ‘애가 아픈데’ 버전으로 바뀌어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영향력 있는 맘카페 회원이라며 좋은 후기를 대가로 진료비를 공짜로 해달라는 등 이런저런 요구를 하다 거절당하면 거꾸로 악성 포스팅을 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이런 피해 탓에 소아과를 아예 닫아야 했던 사례를 주변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보충 제도로라도 소아과 지원 늘려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감소는 저출산 때문에 일어났지만 재차 저출산 경향을 부추기는 역할도 수행한다.
최근 평균적인 출산 연령대가 올라가며 미숙아를 조산(早産)하는 사례가 늘었는데 출산까진 산부인과의 일이지만 미숙아를 인큐베이터에서 관리하는 건 소아과의 담당 업무여 서다.
소아과 전문의가 감소하면 출산이 늘어도 이런 미숙아를 살릴 수가 없다.
이런 2차적 파급효과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 차원에서 다른 진료과와의 상대적 격차를 줄여나갈 방법을 찾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형평성 등의 이유로 소아청소년과에만 보조하는 게 어렵다면, 소아과 진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의료 사고 등에 대한 정부 보증 제도를 운용하는 식으로라도 소아과 선택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소아과가 진료 대상으로 삼는 영아나 소아는 원래부터 질병에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진료 중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로 장애를 입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처럼 소송에 휘말리거나 형사적 책임을 질 가능성까지 떠안으면서까지 사명감만으로 소아과를 선택할 성인(聖人)은 많지 않다.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뜻하는 ‘수가’의 상향도 중요하지만 저출산 기조가 계속 이어진다면 더 포괄적이고 보충적인 방식의 제도도 고민해야만 소아과 기피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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